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노벨문학상 역사 123년에 아시안 여성 작가 최초의 역사이다. 위대한 작가의 탄생이 문학계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본다.
- 책이 불티나게 팔린다.
만 5일 만에 100만을 돌파했다 한다. 출판업계에 재도약의 발판을 놓았다고 한다. 경제성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책을 버리고 이사하는 시대, 전자기기를 멀리하고 나무가 준 종이, 자연과 더 가까워질 기회를 가졌다는 생각이다. 혹자는 한국 사회의 특징, 냄비근성, 유행 민감성이라 한다. 그러나 논자는 붐 조성의 흥이 존재하는 사회,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회이며, 정말 ‘공동체성’이 있는 사회, 국가가 아니라는 긍정적 감탄을 갖는다.
바라기는 책안에 든 글과 생각을 읽을 수 있기를, 메시지를, 가치를 공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독서 열풍이 분다.
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It 시대에 인문학에 대한 관심, 돈과 경제성 보다는 사람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 증대의 시간이 맞이한 것이다. 에로스 + 필리오케적 사랑으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인지? 물질적 넉넉 함으로 육체적 쾌락을 탐하지 않고, 가치중심적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지혜의 보고로 독서에 관심할 수 있을 것인지? 라는 기대도 부풀어 오른다. 더더욱 관심해야만 하는 문학을 포함 K-culture에 대한 비평력 증대와 국가적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질 것인지? 이렇게만 하면, 문화 강국으로 경제성도 담보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국가적 차원에서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작가에 대한 관심 폭발이 일어났다.
초판 중고 책값이 30만 원, 작가 서명이 담긴 책의 값이 40만 원인 의미는 작가에 대한 관심이다. 작가 한강은 시인, 가수, 음악인, 종합예술인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학술대회 개최 제안, 명예박사, 교수, 기념관 제안에 거부의사를 표명했다. 그 의미는 특유의 차분함을 내면의 열정으로 불태우는 모습이다. ‘도처에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의 시기에 잔치할 수 없다.’는 작가의 아버지가 전하는 수상소감은 아들과 식사하는 일상의 저녁에 맞이한 담담한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나는 작가의 영적 세계이다. 90년 뒤, 2114년 출간될 한강의 “사랑하는 아들에게”의 작품은 지난 2019년 노르웨이 오슬로 ’미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제목이 주는 의미는 한 인간과 그의 삶에 대한 관심(사랑)일 뿐아니라, 다음 세대(생명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 작가의 고향과 그 역사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역사 왜곡 세력의 팽배 시대에, 이 역사(사건) 자체가 주는 폭력에 작가의 대답으로의 작품 ‘소년이 온다.’가 아직 국내적 공감대의 형성이 채 이루어지기 그 이전에 노벨상 수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과연, 한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그 국가사회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역사 인식의 변화를 불러올 것인가?’라는 큰 화두를 던진다. 작가 한강의 조국 한국의 역사와 사회 속의 광주와 전라도는 어떤 곳인가? 이제 두 명의 노벨상 수상 자를 배출한 땅이다. 민주화의 씨앗을 피로 뿌렸어도, 고통으로 뿌렸어도, 그 열매는 빼앗겨 버린 역사와 현실을 맞이하고 있는 땅이다. 반면, 씨앗을 뿌린 적도 없는데, 민주화의 열매도 따 먹고, 그 열매까지 빼앗아 가져간 땅과 사람들도 있는 현실이다. 다수와 이로인해 잡은 권력과 경제력의 폭력에 대한 보상으로 노벨상은 아니기를 염원한다.
다수의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 당해보지 않고 누리기만 하는 땅의 사람들에게 당부한다. 당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나 마음은 있는 것인가? 있다면,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는 이제 그만 멈추어 주라. 세계인이 감동한 노벨상이다. 휘두르기만 했던 그 폭력의 산물인 아픈 역사까지도 부인하고, 자기들의 변호에 재포장하는 현실에 노벨상 수상의 의미가 큰 것이다. 상호비방이나 지역감정, 피해 의식적 접근이 아니라 공감의 필요성에 대한 절실한 외침이다. - 문학에서의 ‘한글’이라는 언어의 재조명과 밝은 미래가 엿보인다.
6912종의 언어 중, 언어학자 데이빗 해리슨은 2050년내에 세계 5대 언어 중 하나가 될 것으로 한글을 평했 다. 최첨단 단순성이 그 장점이라 했다. K-문화의 영향으로 한글 공부가 폭발하고 있다. 미국 언어학자 로버트 램지는 ‘세계의 알파벳’ 최종 남을 언어’라고 했고, 미 작가 펄 벅은 ‘가장 단순하고 훌륭한 글자’라고 일찍이 말했다. 이번 노벨상 수상에는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힘이 컷다고 말한다. 영국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했던 것으로 증명한다. K-Culture, 문화 컨텐츠의 힘, 문학, 이야기의 힘이다. 이제 노벨문학상 작품을 원서로 읽는, 작가 한강을 보유한 고국을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 한국의 성인 문맹률 1위 국가의 불명예가 변화될까?
OECD 40개국 중 성인 문맹률, 즉, 읽고 쓰고 하는데, 이해력이 전무하다 시피하는, 성인들이 가장 많은 나라, 한국인 것이다. 모든 사실과 사회적 현상을 진영논리와 이념의 강박관념과 ‘확증편향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그 원인이라 한다. 이 집단적 정신병과 그 폭력에서 과연 대한민국은 이 노벨문학상 하나 가지고 자유로울 수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인 것이다. 한강의 문학의 열풍이 성인 문맹률 1위의 또 다른 원인인 ‘경제성의 절대 성’에서 벗어나, 물질 이상의 것이 있음을 자각하는, 자유함 입는 개인과 사회와 국가가 되어 가기를 기대한 다. 한국민과 그 사회의 정신적, 영적 변화가 가능해지기를 기대하고 염원하는 것이다. - 노벨상을 인생의 목표로, 꿈으로 삼는 ‘정점에 대한 열망’이 저변확대와 관심으로 이어질 것인가?
노벨상의 영향으로 인해 ‘정점에 대한 열망’이 골프에서 박세리 열풍만큼이다. 1등에 관심보다는 ‘문학의 저변 확대’가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문학의 저변확대’라는 논제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역할이 중요하다. 작가의 상을 받은 이유가 자신이 아닌, 자신의 시적 문체나, 역사적 주제를 다룬 작품성이 아닌, 문학을 해왔던 선배 들에 돌렸던, 그들의 영향력과 자양분에 대한 감사 표현에 주목하라. ‘일관성’이라는 위인의 기준으로 작가 ‘조 정래’, ‘황석영’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한강의 ‘일관성’ 내지 ‘언행일치적 삶’이라는 진실성만 언급해 두고 싶다. - 한강이 가진 공감력과 사유력을 공유할 수 있을까?
시적 언어(은유적 메타포)의 구사와 상상력과 영적인 세계에의 관심이 실제 역사를 서사(기술) 했기에 그는 이제 노벨상의 작가가 아니라 인류의 삶과 관심에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 것이다.
이처럼 남을 더 배려하는 공감과 사유의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런 영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예민한 살아있는 인간애의 감성이, 남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사랑의 사고, 생각, 사고력이 양심에 심겨지도록 해야 한다.
- 노벨상 선정 이유의 공감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 그는 육체와 영혼, 산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신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
노벨상 수상은 Doing과 Being, 즉 존재와 행한 일(삶)을 함께 보았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인홀드 니버)에 대한 인식과 공감으로, 국가 혹은 집단적 폭력과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에 세대를 관통하는 트라우마에 관심한 저자의 삶까지도 인정하는 상이다. 우리 모두도 작품활동과 삶의 일치성을 초지일관의 일관 성으로 이루수 있기를 소망한다. - 폭력에 무감각한, 현 미국과 한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영향 할 수 있을까?
국가적이든 특정 사회적이든, 혹은 개인적이든 폭력이 자행되는데 이에 대한 자각과 고통을 느끼는 감각을 잃은 사회가 되었다. 양극화로 인한 소외와 차별이 낳은, 교육 유무에 따라 현상에 속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선택을 어떻게 보고, 그 해결점을 찾아 해결책을 찾아나갈 것인가? 아니 다룰 수나 있을 것인가?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 전환의 시기에 한강의 노벨상 수상의 의미가 크고 크다 할 것이다. 공감이 아니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어떤 이에게는 폭력이 된다.
발행인 김재율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