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였다. 인간의 노력과 선행과 공로로 구원받고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는다고 선포한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에서 출발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으로 종결된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축복이다. 그러나 은혜를 인간관계의 감정선에서 오용하는 현실을 본다.
목사의 설교를 듣고 흔히 ‘은혜받았다’라고 말한다. 설교자에게는 칭찬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예배자의 자세는 아니다. 예배자는 은혜받으려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미 받은 은혜를 감사예물로 가지고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또한 ‘은혜롭게 하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을 혹자들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거룩한 성도의 마음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부정이나 불법이라도 눈감아주고 대충 넘어가자’는 심리가 녹아있다.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교협) 사태를 지켜보면서 교회 안에서 ‘오용된 은혜’의 폐해를 절감한다. 교협이 3개로 나뉘어 교계뿐만 아니라 한인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데, 그 당사자들 조차도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거나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증경회장이라 불리우기를 좋아하는 전직 회장들은 “은혜롭게 해결하세요”라는 거룩한 말로 본질을 흐리게 한다. 한 원로 목사는 “누구의 자 잘못을 따지지 말고 연합하라”고 권면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불법을 조장하는 격이다.
어떤 목사는 “마음을 합해서(은혜스럽게?) 이번엔 신 목사가 내년에는 진 목사가 그 후에는 이 목사가 회장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회장 나눠 먹기를 주문하기까지 한다. 한편에 선 어떤 목사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들먹이며 순교자 코스프레로 상대측을 악마화하는데, 사실은 자신의 눈을 찌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한 마디로 ‘은혜가 넘쳐나는데, 문제는 더 꼬이고 있다.
“달을 보기 위해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보라.” 이 말은 ‘견월망지’라는 고사성어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짓을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견월망지’의 교훈은 진실을 흐리게 하는 말과 행동을 잘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와 거짓 선동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교협 문제를 심도 있게 살펴보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현재 3개로 나누어진 교협은 모두 다른 정관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같은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별개의 단체이며,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한 이 중 2개는 불법단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협 문제의 핵심은 ‘합법적 정통성’이 누구에게 있는가? 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조직에서는 합리적인 규칙 즉, 창립부터 이어온 정관이나 회칙에 의해 합법적인 선거로 선출된 리더만이 그 정통성을 부여받는다. 정관을 위반하여 퇴출되었거나 정관을 무시하고 별도의 조직을 구성하고, 정관을 자의로 개정하는 것은 모두 불법 행위이다.
미국에서 종교단체를 포함한 비영리단체는 주 정부에 등록하고 IRS에 신고하여 그 법적 지위를 획득한다. 이 또한 ‘합법적 정통성’을 가지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이것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항이다.
이런 단순한 것조차 확인하지 않고 친분관계를 따라 줄을 서거나, 아니면 명예를 탐하는 자들이라고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 또한 지혜롭지 못할 뿐 아니라 문제를 증폭시키는 처사이다. 예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향해 진노하심은 그들이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 할지라도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는 거짓 선지자이기에 정죄하신 것이다.
‘합법적 정통성’을 무시하고 “전직 회장들이 우리 편이다”, “우리 측은 큰 교회 목사들이 지지한다”, “우리는 한국 교계와 교류한다” 등으로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은, 마치 거짓 선지자들이 외치는 몸부림과 다를 바 없다.
‘은혜롭게 해결하자’가 문제해결의 답이라면 한국 개신교 교단의 숫자가 374개로 분파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관을 위반하고 법원의 판결마저도 무시하는 후안무치한 자나 집단을 교계가 ‘은혜’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허용한다면, 나아가 악의 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교회를 파괴하는 행위는 계속 반복될 것이 자명하다.
‘은혜’가 더 이상 세상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부지불식 간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조롱거리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부정’과 ‘불법’을 ‘은혜’와 바꾸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사설: 편집장 여호수아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