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오만과 착각

오만과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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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 선포이며, 교회는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선교적 공동체이다. 교회 역사는 이 땅 위에 정의롭고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희생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은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나 노력과는 너무도 상반된 것이기에 가슴이 아프다. 그것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극단적 양극화 현상이다.
세계는 다시 신냉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이 수정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도입하면서 냉전이 종식되고 근대 이후 잠깐 평화 시대를 누리는 듯하였으나 다시 전쟁의 시대로 회귀한 듯하다.
러시아의 푸틴은 서방으로부터 받은 침략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들며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장이 자국의 안보에 치명적이라는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민간인 납치에 대응하여 가자지구를 초토화하고 이란과 시아파 이슬람 무장세력인 헤즈볼라와 후티 반군을 상대로 전쟁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도 내전 상태와 다름 없다.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가세하여 폭력적으로 사회를 양분화 시키고 있다. 기독교 복음주의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군산복합체와 총기 소지를 지지하며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대통령선거 열기는 도를 넘어 진영 간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극심한 대립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은 아직도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가 한강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에 이어 한국인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한글이 또 하나의 한류 콘텐츠로 부상한 가운데 문화강국으로서 한국인의 높은 지성미를 뽐낸 쾌거이다. 그러나 작품의 배경이 5.18 광주와 4.3 제주에 있다는 이유를 들어 노벨상 수상에 반대하는 자들이 있다니 참으로 가슴 아프다. 국가폭력에 항거하여 개인의 윤리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역사적 사건이 또다시 진영논리의 폭력으로 영웅마저 처참하게 하는 것을 목도 한다.
이러한 분열과 갈등, 폭력과 전쟁의 중심에 유대교와 기독교의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이 있다. 마치 현대판 바리세인들을 보는 것 같아 슬프다. 기독교가 평화 대신 분쟁과 전쟁을 외친다면 무엇으로 이 땅에 평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사랑을 실천해야 할 기독교는 65만 명을 넘어선 미국 내 노숙자들에게 관심은 있는 가?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천민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신봉하는 것이, 마치 복음주의자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보수를 표방하는 기독교인이 진보적 성향의 기독교인에게 빨갱이라고 서슴없이 내뱉는 오만은 어떤 자신감인가?
교회가 무너져가고 있다고 하지만 스스로 무너트리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더 늦기 전에 오만과 착각 에서 벗어나 차분히 세상을 관조해야 할 때이다. 인간의 환경파괴가 가져온 기후변화도 ‘바이오 필리아’ 이론을 적용하여 자연과의 공생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교회는 ‘아가페’와 함께 ‘필리아’가 필요 하다. 차이를 넘어 공생으로 가기 위해서 때로는 불편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가서 형제자매가 공동체성을 회복할 때 교회가 살고 세상을 살리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장 여호수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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