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명한 대학의 철학 시간에 있었던 일화이다. 신의 존재에 대한 여러 역사적 사상들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어 잠시 교수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학생 중 하나가 교단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하게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God is nowhere’(신은 어디에도 없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교단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앞에 나간 학생이 써놓은 마지막 단어를 지우고 두 단어로 나누어서 이렇게 고쳐 썼다. ‘God is now here’(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학생들은 기막힌 반전에 모두가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시 53: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시 53:1) 한다고 하였다. 어리석은 자의 특징을 잘 말해주고 있는 말씀이다. 어리석다는 것은 지적으로 미련하고, 종교적으로 무지하며, 성품 적으로는 잔인한 자를 일컫는 말이다. 어리석은 자가 하나님이 없다고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부패한 본성이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 이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과의 분리는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말한 다. 그래서 하나님과 분리된 자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이 있다. 누구인가? 거듭난 자이다. ‘거듭 난다’는 뜻은 ‘위로부터 태어나다’는 뜻이다.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은 죄인의 영적 생명이 다시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거듭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성경은 거듭난 자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요 1:13)라고 말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를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고 한다. 새로운 피조물은 만물을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의지로 새롭게 창조되었음을 말한다.
거듭남은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을 때 가능하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죽음, 부활, 재림, 최후 심판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삶의 방향을 그분에게로 전환하여 전 인격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거듭 난 자는 구원의 확신과 더불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돌보심 아래 모든 것을 맡기고 안심하며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영적인 이해력이 결여된 짐승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를 짐승 같다고 말한 것은 그들은 부패하여 기질 상 가증한 악을 행하는데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짐승 같은 사람은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부인하며 죄인 된 자기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교만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시 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